가전제품 광고에 아이돌이 등장하는 것은 이제 낯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실제 연예인이 아니라 인공지능(AI) 기술과 가전제품의 특징을 캐릭터화한 가상의 아이돌 그룹이 등장했다.

LG전자가 올인원 세탁건조기 ‘AI 워시콤보’의 새로운 마케팅을 위해 5인조 AI 가상 아이돌 그룹 ‘에이아이돌(AI-DOL)’을 선보였다. 세탁기와 건조기라는 전통적인 생활가전을 젊은 소비자들이 익숙하게 접하는 음악과 아이돌 콘텐츠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업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세탁건조기가 아이돌이 된 이유

LG전자가 에이아이돌을 기획한 가장 큰 이유는 세탁건조기라는 제품의 특성 때문이다.

세탁기와 건조기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오랫동안 사용해온 대표적인 생활가전이다. 냉장고나 세탁기처럼 소비자에게 익숙한 제품일수록 신제품이 출시됐을 때 소비자가 차별점을 인식하도록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

단순히 “AI 기능이 적용됐다”, “용량이 커졌다”, “더 편리해졌다”는 식의 전통적인 광고만으로는 젊은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LG전자는 제품의 핵심 기능을 사람처럼 표현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AI 워시콤보의 핵심 기능을 각각 하나의 아이돌 멤버에 대응시키고, 음악과 춤, 패션, 영상 콘텐츠를 통해 제품을 자연스럽게 알리는 방식이다.

LG전자에 따르면 에이아이돌은 5인조 그룹으로 구성됐으며, 각 멤버는 제품의 주요 기능을 상징한다. 올인원 대용량, AI 타임센싱, AI 세탁·건조, 미니멀 플랫 디자인, 미니워시 등이 각각 캐릭터의 콘셉트로 활용됐다.

즉 단순한 광고 모델을 만든 것이 아니라 제품 자체를 하나의 아이돌 그룹으로 재해석한 셈이다.

네오 Y2K 콘셉트로 젊은층 공략

에이아이돌의 또 다른 특징은 ‘네오 Y2K’ 콘셉트다.

Y2K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유행했던 패션과 음악, 디자인 등을 의미한다. 최근에는 당시의 복고적인 감성을 현대적인 기술과 결합한 형태가 젊은 세대 사이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LG전자는 여기에 AI와 미래적인 이미지를 결합했다.

과거의 레트로 감성과 미래지향적인 기술을 함께 보여주면서 AI 워시콤보가 가진 첨단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세탁기의 기능을 설명하는 것과는 접근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제품 설명서를 보는 것처럼 기능을 나열하는 대신, 캐릭터와 음악을 통해 소비자가 콘텐츠 자체를 즐기면서 제품의 특징을 기억하도록 만드는 전략이다.

특히 젊은 소비자들이 제품 광고보다 짧은 영상과 음악, 챌린지 콘텐츠에 더 익숙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SNS를 중심으로 한 이번 마케팅은 상당히 직접적인 접근이라고 볼 수 있다.

신곡 '아이워시'까지 공개

에이아이돌은 단순히 이미지로만 만들어진 가상 그룹도 아니다.

LG전자는 에이아이돌의 신곡 ‘아이워시(I WASH)’를 공개하고 안무 영상과 SNS 콘텐츠를 함께 선보였다.

특히 음악과 춤을 활용해 세탁건조기의 특징을 자연스럽게 전달하도록 구성했다.

제품 광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탁과 건조를 한 번에” 같은 문구 대신 음악과 안무를 통해 제품의 특징을 소비자가 반복적으로 접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실제로 반응도 나타나고 있다.

LG전자에 따르면 ‘아이워시’는 인스타그램 인기 상승 오디오 1위에 올랐으며, 안무 영상은 릴스 인기 순위 4위를 기록했다. 가수 최예나, 코미디언 이선민, 안무가 효진초이 등이 챌린지에 참여하면서 콘텐츠가 확산되고 있다.

광고를 직접적으로 시청하지 않더라도 SNS를 이용하다가 음악이나 챌린지를 통해 자연스럽게 브랜드와 제품을 접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핵심은 AI 워시콤보

에이아이돌의 중심에 있는 제품은 LG전자의 올인원 세탁건조기 ‘AI 워시콤보’다.

이 제품은 세탁기와 건조기를 하나의 제품에 결합해 세탁부터 건조까지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든 제품이다.

2026년형 신제품은 세탁 용량 25kg, 건조 용량 21kg을 갖췄으며 4kg 용량의 미니워시와 결합할 수 있다. 대용량 빨래를 처리하면서도 별도의 세탁기와 건조기를 각각 설치해야 하는 공간 부담을 줄이는 것이 주요 특징이다.

여기에 AI 기술을 활용한 기능도 적용됐다.

대표적인 기능 가운데 하나가 ‘AI 타임센싱’이다.

세탁물의 양을 파악해 예상 소요 시간을 빠르게 안내하는 기능으로, 사용자가 세탁이 언제 끝날지 보다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돕는다.

사용자의 세탁량과 상황에 맞춰 세탁과 건조 과정을 최적화하는 것도 AI 워시콤보의 주요 특징이다.

LG전자는 과거부터 세탁·건조 가전에 AI 기술을 적용해왔다. 실제로 LG전자는 딥러닝 기반 AI DD 기술을 통해 의류 재질을 인식하고 적절한 세탁·건조 동작을 선택하는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이번 에이아이돌은 이러한 기술적 특징을 소비자에게 보다 재미있는 방식으로 전달하기 위한 마케팅 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

'기능 설명'에서 '경험' 중심 광고로

이번 사례에서 주목할 부분은 가전제품 광고의 방식 자체가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생활가전 광고는 제품의 성능과 가격, 소비전력, 용량, 편의기능 등을 직접 설명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소비자가 제품을 사용하는 상황이나 브랜드가 전달하고자 하는 경험을 중심으로 광고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AI가 생활가전에 본격적으로 들어오면서 제품의 기능을 소비자가 한눈에 이해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예를 들어 ‘AI 기반 최적화’라는 문구만 봐서는 소비자가 실제 생활에서 어떤 편리함을 얻을 수 있는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이때 제품 기능을 하나의 캐릭터로 만들어 보여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AI 타임센싱이라는 기술적인 이름 대신 특정 멤버의 특징으로 표현하면 소비자가 훨씬 쉽게 기억할 수 있다.

LG전자가 에이아이돌의 각 멤버와 제품의 핵심 기능을 연결한 것도 이런 효과를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소비자가 제품 사양을 외우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를 통해 브랜드와 제품을 기억하도록 하는 전략이다.

가상 아이돌을 활용한 마케팅의 장점

가상 아이돌을 활용하면 기업 입장에서도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우선 실제 연예인의 이미지나 일정에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으면서 브랜드가 원하는 캐릭터와 세계관을 자유롭게 구축할 수 있다.

또한 음악, 영상, 이미지, SNS 콘텐츠 등 다양한 형태로 확장하기도 쉽다.

특히 AI와 가상 캐릭터의 결합은 LG전자가 강조하는 ‘미래지향적인 기술’이라는 이미지와도 잘 맞는다.

실제 사람을 모델로 세우는 대신 AI로 만들어진 가상의 그룹을 활용함으로써 제품 자체의 AI 기술과 마케팅 방식까지 하나의 메시지로 연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가상 아이돌 마케팅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콘텐츠가 재미없거나 제품과의 연결성이 약하면 단순한 화제성 이벤트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에이아이돌이 얼마나 오래 소비자들의 관심을 유지할 수 있는지, 실제 제품 구매로 얼마나 연결되는지가 중요한 평가 요소가 될 전망이다.

9월 말까지 디지털 채널 활동

에이아이돌은 오는 9월 말까지 디지털 채널을 중심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LG전자는 이 기간 동안 AI 워시콤보의 주요 기능을 다양한 콘텐츠로 알릴 계획이다. 제품의 대용량과 AI 기능뿐만 아니라 미니멀한 디자인, 미니워시 등 다양한 특징을 에이아이돌의 콘텐츠와 연결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SNS에서는 이용자가 직접 참여하는 챌린지 형식의 콘텐츠가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단순히 기업이 광고 영상을 올리는 방식과 달리 이용자가 음악이나 안무를 활용해 직접 콘텐츠를 제작하면 광고의 범위가 자연스럽게 확장되기 때문이다.

가전업계에도 새로운 광고 경쟁 시작될까

LG전자의 이번 시도는 단순히 한 제품의 재미있는 광고라는 점을 넘어 가전업계의 마케팅 방향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도 가능하다.

AI가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로봇청소기 등 다양한 생활가전에 들어가면서 제품의 기능 자체가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AI라는 단어가 붙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제품의 차이를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제조사들은 기술을 개발하는 것만큼 그 기술을 소비자에게 쉽게 전달하는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

이번 에이아이돌은 바로 이 문제에 대한 LG전자의 새로운 접근 방식이다.

‘세탁건조기의 AI 기능’을 기술 용어로 설명하는 대신 ‘AI 가상 아이돌’이라는 친숙하면서도 재미있는 콘텐츠로 바꿔 소비자에게 전달했다.

LG전자는 세탁기가 이미 모든 세대에게 익숙한 필수가전인 만큼 신제품의 차별점을 알리기 위해 새로운 접근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도 고객에게 새로운 재미를 주는 광고 전략과 크리에이티브를 지속적으로 선보이겠다는 입장이다.

가전도 이제 콘텐츠가 된다

이번 에이아이돌 사례는 AI 시대의 마케팅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과거에는 제품을 잘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면 이제는 제품의 기술을 소비자가 얼마나 쉽게 이해하고 기억하도록 만들 수 있는지도 중요한 경쟁력이 되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는 전통적인 TV 광고보다 SNS 영상이나 음악, 밈, 챌린지 등이 더 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LG전자가 세탁건조기라는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제품을 5인조 가상 아이돌과 음악으로 재해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에이아이돌이 단순히 한 번 화제가 되고 끝나는 프로젝트가 될지, 아니면 새로운 가전 마케팅의 성공 사례로 남을지는 앞으로의 콘텐츠 확산과 실제 소비자 반응에 달려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있다.

세탁기와 건조기 같은 전통적인 생활가전도 이제는 단순히 기능과 성능만을 경쟁하는 시대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AI 기술이 제품 안으로 들어온 만큼 마케팅 역시 AI와 디지털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LG전자의 ‘에이아이돌’은 바로 그 변화를 보여주는 독특한 사례다.

세탁건조기를 아이돌로 만들고, 제품의 핵심 기능을 멤버의 개성으로 표현하고, 신곡과 안무를 통해 SNS에서 확산시키는 방식은 기존 가전 광고와는 확실히 다른 접근이다.

앞으로 다른 가전업체들도 AI와 가상 캐릭터, 음악, 숏폼 콘텐츠 등을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마케팅을 잇따라 선보일 가능성이 있다.

결국 소비자가 기억하는 것은 복잡한 제품 사양표가 아니라 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기일 수 있다.

LG전자가 이번 에이아이돌을 통해 노리는 것도 바로 그 지점이다. ‘AI 워시콤보’라는 제품명을 단순히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소비자의 일상 속에서 하나의 콘텐츠와 경험으로 기억되게 만드는 것이다.

가전제품과 아이돌이라는 다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요소를 결합한 이번 실험이 실제 판매와 브랜드 인지도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앞으로의 결과가 주목된다.